좋은 날이야 산책하기 좋은 날이다 정말 어느 날의 잠에서 깨어나 떠올린 기억이 어느 날의 산책이 아니라 산책 없이 헤어진 날 들었던 너의 목소리라면 그것은 사랑이다 - 「사랑과 교육」 中 내가 『철과 오크』를 읽었던가? 기억나지 않는 일이다. 어쩌면 『사랑과 교육』도 꼭 그럴 것만 같다. 그러나 나는 그의 시 「사랑과 교육」을 좋아한다. ‘사랑’과 ‘교육’의 강제적 결합이 교집합을 매개로 형성하는 비유도 적당하다고 본다. '사랑의 교육'에 비해 훨씬 근사한 제목이라 생각된다. 그리고 무엇보다 송승언의 시에는 다른 시인들의 작품과 구별되는 그만의 섬세함이 있다. 하나의 사건 또는 경험에 대해 다른 사람들 보다 몇배는 많은 시적 국면을 발견한다. 동일한 사건 또는 경험을 시로 표현 가능한 최소단위로 쪼개는 ..
얼룩진 체온을 닦아 주어도 내일이면 바닥으로 흐르는 몸들 - 「아가미의 시절」 中 이곳은 미세먼지가 나쁨인 초여름의 빌라, 너와 나의 거리는 일정하게 움직인다. - 「구(球)」의 첫문장 꽃병의 물이 썩어 간다 - 「악력(握力)」의 첫문장 박은정의 시는 첫문장으로부터 시작된다. 이말은 단순히 시의 맨 앞에 있는 문장이라는 의미가 아니라, 화자의 최초의 인식을 보여준다는 의미에서 첫문장이다. 이 문장을 통해서 시인은 화자가 머물고 있는 특정 맥락 속에서 화자의 인식을 보여준다. 그 중에서도 나는 「구(球)」와 「악력(握力)」이 박은정의 작품이 구성되는 원리를 가장 잘 보여주는 작품이라 생각한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두 작품은 시의 문장이 구성되는 방식이 동일하다. 가장 의식적인 문장은 첫문장이고, 이후의 ..
우리는 해가 뜰때 일어나 밭을 일구었고, 해가 지면 집으로 돌아와 꿈으로 엮은 노래를 불렀네 - 「보리 감자 토마토」 中 박은지 시인의 시를 읽었다. 「정말 먼 곳」이라는 등단작은 영화의 모티브가 되기도 했다. 선명한 묘사보다 쓸쓸한 독백으로 가득 찬 시집이었다. 그야말로 "꿈으로 엮은 노래". 꿈은 묘사를 통해 보여주기 보다, 들려주어야 한다. 밤새도록 누군가의 귓가에 고백되어야 한다. 추상으로 가득한 꿈을 간결한 독백으로 들려주는 것이 박은지 시의 미덕이다. 이때 '꿈'은 '기억'이라는 이름을 치환 가능하며, 박은지의 시가 자유를 확보하는 근거가 된다. 그래서 시인은 수시로 꿈 속으로 들어간다. 꿈에서는 어제를 살고 깨어나서는 내일을 살았다 - 「뜸하게, 오늘」中 한편 시인에게 '꿈'은 일종의 도피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