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식의 흐름을 따르며 네가 나를 찾아서 돌아다니는 장소들이 궁금해. 너는 어디에 있는 나를 기억할까. 너의 상상력은 나를 어디까지, 어디까지 데려갈 수 있을까 나를 상상하는 너를 상상하면 나는 네 주위를 하염없이 맴돌 수 있을까. 너를 상상하는 나를 상상하면 너는 내 품으로 걸어들어올 수 있을가. 너는 나를 물끄러미 들여다본 적이 있었다, 한참을. 그리고 모르는 사람이라고 중얼거렸지. 미안합니다, 너는 사람을 잘못 봤다고 몹시 부끄러워했어. 내가 사람 모양을 하고 있구나, 그때 나는 생각했지. 너는 왜 부끄러울까 그때 너는 다른 시간 속으로 후다닥 뛰어갔다. 그때 나는 너의 등 뒤에서 비처럼 쏟아졌다. 내가 비 모양을 하고 있구나, 그런데 내 모습이 그렇게 변할 걸 사람들은 어떻게 알았을까. 기다렸다는 ..
집으로 돌아온 너는 당분간 잠잠해졌어. 잠깐의 외출동안 네가 마주쳤던 눈부신 오징어 뼈 영원한 셔틀콕 땅에서 솟아오르던 아름다운 종려나무를 떠올리며 언니를 집을 박수 소리를 다정하게 대해보려 했지만 - 「부동시」中 박지일 시인의 실험에 동의한다. 구어의 세계, 문어적 전통의 관습적 문장이 쥐어짜는 감정과 전략적 거리두기!! 립싱크 하이웨이에 수록된 작품들의 배치에 대해서 생각해본다. 그의 화법은 다양해 보이지만, 크게 두개의 유형으로 분류가 가능해 보인다. (유형을 나누는 것을 싫어하지만) 시적 전략으로서 그의 문체 실험에 해당하는 작품군이 한 부류이며, 구어적 습관으로 자유롭게 늘어놓는 발화가 또 한 부류이다. 하여 같은 시집의 최가은의 평에서 레몽 크노를 언급하고 있는 것은 적절하다는 생각이 든다. ..
누워 있던 머리빗은 방금 지나온 곳이 꽃집이라는 것을 깨달았고 해바라기는 아직 그곳에 있다 - 「현대미문의 사건」中 쓰는 것은 바나나를 마주하는 것 까먹은 일에 대해 미끄러지는 것 노랗게 질리는 것 하지만 맛있게 우는 것 - 「뮤즐리 그러나」 中 이 지독한 의미의 세계를 어떻게 벗어날 것인가? 왜 아직까지 해석되어야 할 어떤 것이 있을 것이라는 가정을 내 몸 깊숙히 각인시킨 채로 시를 읽고 있을까. 의도된 아무말은 진짜 아무말일까? 아니면 의식적으로 조합된 아무말일까? 사실 그 어떤 감흥이 있어서도 안된다. 오로지 투명한 개념만 인정될 뿐이다. 이렇게 읽는 것이 맞는 방법일까? 결국 화법이다. 윤지양의 시는 결국 시인의 화법을 이해하는 것으로 수긍하게 된다. 형식을 통해 예술에 대한 개념을 이해하게 한다..
출렁이는 어둠 속에서 아이가 보인다 쌀알처럼 반짝이는 아이의 발끝에서 뿌리가 나오고 손가락에서 새순이 돋고 겨드랑이에서 덩굴이 뻗어 나온다 그때 바깥은 가을이 되고 바람은 차가워지고 한꺼번에 불어오는 바람 광폭했다 두 젖꼭지는 땅을 뚫고 오르는 싹이고 입으로는 열매를 뱉고 귀로 가지를 내보내고 아래로는 은하수가 흘러나간다 밤마다 구멍으로 별이 침입하고 바람이 혀 내밀어 아랫도리를 훑었다 누가 빛보다 빠르게 소멸했는가 누가 빛보다 빠르게 다가와 나와 마주쳤는가 꽃바지 꽃바지 입은 그녀 입벌리고 잠들었는데 - 「하남 가는 심야 좌석 버스의 떡 장사」 中 자칫 장석원의 시를 읽다 보면 시에 삽입되거나 불쑥 불쑥 간섭하는 링크들이 몹시 귀찮게 느껴질때가 있다. 그러면서도 각각의 문장이 만들어 내는 이미지와 그것..
하재연의 시에서 “나는 길게 누워 있는 섬 위의 저녁 구름에 / 서린 분홍 같은 것이었다가”(「한 사람」)와 같은 구절은 같은 작품의 “미래에서 자고 있는 내 아이의 꿈에 / 들려오는 자장가 / 들어본 적 없이 떠오르는 / 노래의 끊어진 마디들”이라는 구절과 발화 방식이 다르다. 언어가 결합되는 과정에서 의미가 파생되는 원리가 다르게 느껴진다는 것이다. 독자의 기억을 매개하는 언어가 될 수도 있고, 일상 또는 사전적 의미에 기대어 특정 의미를 조립해내고 있는 문장일 수도 있다. 의도적으로 낯설게 결합하고 있는 “나의 목소리는 / 한없이 당신의 목소리와 겹쳐져서 / 이어지다가 시작된 철자로서 끝이 나는 나의 이름을 / 허공에 그리며 사라져갔습니다.” (「해변의 아인슈타인」)와 같은 문장은 실재하지 않음에도..
혼자 가는 먼 집 당신……, 당신이라는 말 참 좋지요, 그래서 불러봅니다 킥킥거리며 한때 적요로움의 울음이 있었던 때, 한 슬픔이 문을 닫으면 또 한 슬픔이 문을 여는 것을 이만큼 살아옴의 상처에 기대, 나 킥킥……, 당신을 부릅니다 단풍의 손바닥, 은행의 두 갈래 그리고 합침 저 개망초의 시름, 밟힌 풀의 흙으로 돌아감 당신……, 킥킥거리며 세월에 대해 혹은 사랑과 상처, 상처의 몸이 나에게 기대와 저를 부빌 때 당신……, 그대라는 자연의 달과 별……, 킥킥거리며 당신이라고……, 금방 울 것 같은 사내의 아름다움 그 아름다움에 기대 마음의 무덤에 나 벌초하러 진설 음식도 없이 맨 술 한 병 차고 병자처럼, 그러나 치병과 환후는 각각 따로인 것을 킥킥 당신 이쁜 당신……, 당신이라는 말 참 좋지요, 내가..
체인질링 영물들에게 둘러싸여 눈부신 하룻밤을 보냈습니다. 동심원들이 찰랑거렸습니다. 깊이 깊이 아주 깊은 데까지 젖은 돌이 이쪽을 물끄러미 보고 있었습니다. 바꿀 것이 있는데 나의 아름다운 악몽은 조금씩 밝아오고 있었습니다. 지평선이 없었습니다. 시집 『생물성』과 마찬가지로 신해욱의 시집은 시집의 첫번째 시에서 이후 시에 대한 많은 단서를 제공해준다. 김소연 시인의 설명처럼(「헬륨 풍선처럼 떠오르는 시점과 시제」, 『생물성』, 문학과지성사, 2009. 발문 中) 신해욱의 시는 연과 연 사이에 깊은 계곡이 흐른다. 아득한 시차가 느껴지기도 하고, 앞 연의 의미가 뒤따라 오는 연으로 자연스럽게 연결되지 않아, 의미의 이해가 지연되기도 한다. 위의 작품은 '영물 - 동심원 - 젖은 돌 - 악몽 - 지평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