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워 있던 머리빗은 방금 지나온 곳이 꽃집이라는 것을 깨달았고 해바라기는 아직 그곳에 있다 - 「현대미문의 사건」中 쓰는 것은 바나나를 마주하는 것 까먹은 일에 대해 미끄러지는 것 노랗게 질리는 것 하지만 맛있게 우는 것 - 「뮤즐리 그러나」 中 이 지독한 의미의 세계를 어떻게 벗어날 것인가? 왜 아직까지 해석되어야 할 어떤 것이 있을 것이라는 가정을 내 몸 깊숙히 각인시킨 채로 시를 읽고 있을까. 의도된 아무말은 진짜 아무말일까? 아니면 의식적으로 조합된 아무말일까? 사실 그 어떤 감흥이 있어서도 안된다. 오로지 투명한 개념만 인정될 뿐이다. 이렇게 읽는 것이 맞는 방법일까? 결국 화법이다. 윤지양의 시는 결국 시인의 화법을 이해하는 것으로 수긍하게 된다. 형식을 통해 예술에 대한 개념을 이해하게 한다..
얼룩진 체온을 닦아 주어도 내일이면 바닥으로 흐르는 몸들 - 「아가미의 시절」 中 이곳은 미세먼지가 나쁨인 초여름의 빌라, 너와 나의 거리는 일정하게 움직인다. - 「구(球)」의 첫문장 꽃병의 물이 썩어 간다 - 「악력(握力)」의 첫문장 박은정의 시는 첫문장으로부터 시작된다. 이말은 단순히 시의 맨 앞에 있는 문장이라는 의미가 아니라, 화자의 최초의 인식을 보여준다는 의미에서 첫문장이다. 이 문장을 통해서 시인은 화자가 머물고 있는 특정 맥락 속에서 화자의 인식을 보여준다. 그 중에서도 나는 「구(球)」와 「악력(握力)」이 박은정의 작품이 구성되는 원리를 가장 잘 보여주는 작품이라 생각한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두 작품은 시의 문장이 구성되는 방식이 동일하다. 가장 의식적인 문장은 첫문장이고, 이후의 ..
출렁이는 어둠 속에서 아이가 보인다 쌀알처럼 반짝이는 아이의 발끝에서 뿌리가 나오고 손가락에서 새순이 돋고 겨드랑이에서 덩굴이 뻗어 나온다 그때 바깥은 가을이 되고 바람은 차가워지고 한꺼번에 불어오는 바람 광폭했다 두 젖꼭지는 땅을 뚫고 오르는 싹이고 입으로는 열매를 뱉고 귀로 가지를 내보내고 아래로는 은하수가 흘러나간다 밤마다 구멍으로 별이 침입하고 바람이 혀 내밀어 아랫도리를 훑었다 누가 빛보다 빠르게 소멸했는가 누가 빛보다 빠르게 다가와 나와 마주쳤는가 꽃바지 꽃바지 입은 그녀 입벌리고 잠들었는데 - 「하남 가는 심야 좌석 버스의 떡 장사」 中 자칫 장석원의 시를 읽다 보면 시에 삽입되거나 불쑥 불쑥 간섭하는 링크들이 몹시 귀찮게 느껴질때가 있다. 그러면서도 각각의 문장이 만들어 내는 이미지와 그것..
하재연의 시에서 “나는 길게 누워 있는 섬 위의 저녁 구름에 / 서린 분홍 같은 것이었다가”(「한 사람」)와 같은 구절은 같은 작품의 “미래에서 자고 있는 내 아이의 꿈에 / 들려오는 자장가 / 들어본 적 없이 떠오르는 / 노래의 끊어진 마디들”이라는 구절과 발화 방식이 다르다. 언어가 결합되는 과정에서 의미가 파생되는 원리가 다르게 느껴진다는 것이다. 독자의 기억을 매개하는 언어가 될 수도 있고, 일상 또는 사전적 의미에 기대어 특정 의미를 조립해내고 있는 문장일 수도 있다. 의도적으로 낯설게 결합하고 있는 “나의 목소리는 / 한없이 당신의 목소리와 겹쳐져서 / 이어지다가 시작된 철자로서 끝이 나는 나의 이름을 / 허공에 그리며 사라져갔습니다.” (「해변의 아인슈타인」)와 같은 문장은 실재하지 않음에도..
나는 평로가가 되기 위해서 이곳 '말이 누웠던 자리'에 글을 쓰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고 여기에 글을 쓰는 것이 오락이 되었으면 하고 바라는 것도 아니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놀이' 처럼 순수한 글쓰기가 되었으면 하고 바라는 마음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한 의미에서 남국재견에 대한 이 글도, 개인의 감상정도로 이해해 줬으면 좋겠다. 더욱이 영화를 본 시점이, 글을 쓰고 있는 이 순간으로부터 한참 떨어진 오래전의 일이기때문에, 남아 있는 기억을 기록해둔 인상기 정도로 이해해 주길 바란다. 영화를 찍고 싶게 만드는 영화 사실 나는 영화를 '서사'라는 범주 안에서 이해하고 싶은 마음이 없다. 그것보다는 영화에서 이야기를 구성하는 방식에 더 관심이 많다. 영화를 영화답게 하는 것은 영화 속의 이야기가 아니..
혼자 가는 먼 집 당신……, 당신이라는 말 참 좋지요, 그래서 불러봅니다 킥킥거리며 한때 적요로움의 울음이 있었던 때, 한 슬픔이 문을 닫으면 또 한 슬픔이 문을 여는 것을 이만큼 살아옴의 상처에 기대, 나 킥킥……, 당신을 부릅니다 단풍의 손바닥, 은행의 두 갈래 그리고 합침 저 개망초의 시름, 밟힌 풀의 흙으로 돌아감 당신……, 킥킥거리며 세월에 대해 혹은 사랑과 상처, 상처의 몸이 나에게 기대와 저를 부빌 때 당신……, 그대라는 자연의 달과 별……, 킥킥거리며 당신이라고……, 금방 울 것 같은 사내의 아름다움 그 아름다움에 기대 마음의 무덤에 나 벌초하러 진설 음식도 없이 맨 술 한 병 차고 병자처럼, 그러나 치병과 환후는 각각 따로인 것을 킥킥 당신 이쁜 당신……, 당신이라는 말 참 좋지요, 내가..
슬픈 표정하지 말아요 / 신해철 1990 슬픈 표정하지 말아요 이 세상 살아가는 이 짧은순간에도 우린 얼마나 서로를 아쉬워 하는지 뒤돌아 바라보면 우린 아주 먼길을 걸어 왔네 조금은 야위어진 그대의 얼굴모습 빗길속을 걸어가며 가슴 아팠네 얼마나 아파해야 우리 작은 소원 이뤄질까 그런 슬픈표정 하지 말아요 난 포기 하지 않아요 그대도 우리들의 만남에 후횐없겠죠 어렵고 또 험한길을 걸어도 나는 그대를 사랑해요 조금은 야위어진 그대의 얼굴모습 빗길속을 걸어가며 가슴 아팠네 얼마나 아파해야 우리 작은 소원 이뤄질까 그런 슬픈표정 하지 말아요 난 포기 하지 않아요 그대도 우리들의 만남에 후횐없겠죠 어렵고 또 험한길을 걸어도 나는 그대를 사랑해요 신해철 솔로 데뷔 앨범에 수록된 곡이다. 무한궤도 해체이후 이제 막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