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워 있던 머리빗은 방금 지나온 곳이 꽃집이라는 것을 깨달았고 해바라기는 아직 그곳에 있다 - 「현대미문의 사건」中 쓰는 것은 바나나를 마주하는 것 까먹은 일에 대해 미끄러지는 것 노랗게 질리는 것 하지만 맛있게 우는 것 - 「뮤즐리 그러나」 中 이 지독한 의미의 세계를 어떻게 벗어날 것인가? 왜 아직까지 해석되어야 할 어떤 것이 있을 것이라는 가정을 내 몸 깊숙히 각인시킨 채로 시를 읽고 있을까. 의도된 아무말은 진짜 아무말일까? 아니면 의식적으로 조합된 아무말일까? 사실 그 어떤 감흥이 있어서도 안된다. 오로지 투명한 개념만 인정될 뿐이다. 이렇게 읽는 것이 맞는 방법일까? 결국 화법이다. 윤지양의 시는 결국 시인의 화법을 이해하는 것으로 수긍하게 된다. 형식을 통해 예술에 대한 개념을 이해하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