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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S/시집

[시집] 여름 상설 공연 / 박은지 (민음사, 2021)

여름 상설 공연 / 박은지

우리는 해가 뜰때 일어나 밭을 일구었고, 해가 지면 집으로 돌아와 꿈으로 엮은 노래를 불렀네 
                                                                                                   - 「보리 감자 토마토」 中

박은지 시인의 시를 읽었다. 「정말 먼 곳」이라는 등단작은 영화의 모티브가 되기도 했다. 선명한 묘사보다 쓸쓸한 독백으로 가득 찬 시집이었다. 그야말로 "꿈으로 엮은 노래". 꿈은 묘사를 통해 보여주기 보다, 들려주어야 한다. 밤새도록 누군가의 귓가에 고백되어야 한다. 추상으로 가득한 꿈을 간결한 독백으로 들려주는 것이 박은지 시의 미덕이다. 이때 '꿈'은 '기억'이라는 이름을 치환 가능하며, 박은지의 시가 자유를 확보하는 근거가 된다. 그래서 시인은 수시로 꿈 속으로 들어간다.

꿈에서는 어제를 살고
깨어나서는 내일을 살았다
                                                                                                    - 「뜸하게, 오늘」中

한편 시인에게 '꿈'은 일종의 도피처가 되기도한다. 강력한 추억이 작동하면서 현재의 삶을 추동하는 원인이 되어준다. 그래서인지 꿈 속은 온갖 그리운 것들로 가득하다. 꿈 속에서 주운 이름을 잊지 않는 유일한 방법은 꿈에서 깨어나지 않는 일이다. 물론 추억을 전제하거나, 미래를 상정할 때, 현재는 언제나 결핍이다. 그곳은 어둠으로 가득 채워져 있는 곳이기도 하다. 그러나 '여기'는 늘 이렇게 완성된다. 그래서 여기는 너무 아름다운 곳이 된다. 

여기 너무 아름답다
우리 꼭 다시 오자                                                                                                   
                                                                                                    - 「못다 한 말」中

시인의 바람대로 '꼭' 여기에 다시 왔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