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키가 작다.

 

나는 키가 작다. 

이것은 나의 콤플렉스다. 그래서 가장 서두에, 어떤 수사도 없이 말하고 싶었다. 이렇게 당당하게 말할 수 있으면 그것은 더 이상 콤플렉스가 아닐 수 있을 것 같아서 더 힘주어 적어보았다. 인간은 과거를 쉽게 망각한다고 하는데, '키'와 관련된 나의 콤플렉스는 나의 지난을 구성하는 가장 선명한 기억들이다. 그래서 하고 싶은 말도 많고, 나를 이해하는데 있어 빼놓을 수 없는 이야기가 되기도 하다. 이는 나의 콤플렉스가 지금까지 내 삶에 많은 영향을 행사했음을 의미한다. 삶에 있어서 일어나지 않은 사건을 가정하며 아쉬워하는 것이 부질없는 일임을 알면서도, 콤플렉스가 내 삶의 인과관계를 많이 바꾸어 놓았을 것이라 추측하는 일은 그만둘 수가 없다. 이렇게하지 않으면 억울해서 살 수가 없을 것 같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콤플렉스를 매개로 해서 아빠의 삶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고, 먼 곳에 있는 동생이 그리워지기도 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엄마의 커다란 사랑이 고맙고 감사하게 느껴졌다.

다시말하지만, 나는 서두에서 '키가 작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러면서 나는 속으로 이제 결혼도 했고, 나이도 어느정도 먹었으니 콤플렉스가 나에게 더이상 의미가 없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여기에는 콤플렉스를 사춘기 시절 잠시 나타났다 사라지는 한시적인 어떤 것으로 이해하는 태도가 전제되어 있다. 미성숙의 양상정도로 치부했던 것이 아닌가. 아니면 콤플렉스에서 벗어나고 싶은 강력한 욕망의 역설적 표현이거나. 어쨌든 "나는 키가 작다"는 사실을 솔직하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다면, 그것이 나는 더이상 콤플렉스에 연연해 하지 않고 있음을 증거하는 태도라 생각했던 것이다. 그런데 사실 나는 전혀 변한 것이 없다. 처음 콤플렉스로 마음을 졸이며 잠못들었던 중학교 1학년 시절로부터 전혀 변한 것이 없었다.

물론 이 글을 쓰는 이유는 나의 콤플렉스를 고백하는 것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다. 내가 가장 최근에 알게 된 사실은 내가 나에 대해서 한번도 진지하게 생각해본 적이 없다는 사실이었다. 그것이 너무나 오랫동안 나의 삶을 지배해온 질서가 되어버린 것이다. 나는 나에게 한번도 진솔했던 적이 없었던 것이다. 나는 그것을 인정하는 것이 몹시 어려웠다. 어느 순간부터 나의 맨 몸뚱아리가 보이기 시작했고, 아무것도 아닌, 그리하여 어떤 매력도 느껴지지 않는 나의 물컹한 살이 만져지기 시작한 것이다. 그래서 더이상 나는 나에게 몰입할 수가 없었다. 매일 아침 내가 마주해야 하는 나의 모습은 아무도 없는 곳에 버려진 나의 모습이다. 삶의 목표를 떠올리는 일은 몹시 귀찮기만 했다. 이대로라면 지금 이 순간에 죽어도 어떤 안타까움이나 아쉬움이 없을 것만 같았다.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은 이런 시간에 찾아오는 일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나는 누구인가

정말이지 그 무렵, 아주 갑작스럽게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이 찾아왔다. 이 달달하고 낭만적 질문의 형태를 띄고 있는 문장이 나에게는 몹시 혹독하게 느껴졌다.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이라는 말이 전하는 뉘앙스처럼 힐링과 치유의 과정으로 번역되지 않았다. 그것은 몹시 잔인했다. 나의 실체를 마주해야 하는 작업이었다. 사실 이 물음은 고통을 감수한 체 스스로에게 던져야 하는 질문이다. 내가 '나'를 자각하고 의식적으로 질문을 던질때, 그리하여 가장 능동적인 주체가 되었을 때, 해결할 수 있는 질문이다. 일차적으로 육안으로 관찰되는 '나'에 대한 물음이 아니라, '관찰'되는 '나'를 보고 있는 '나'에 대한 사유이다. 그렇게 나를 둘러싸고 있던 많은 변명과 핑계를 덜어내자 그제서야 조금씩 나의 얼굴이 보이기 시작했다. 이것은 국민학교 졸업 이후로 한번도 보지 못했던 얼굴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불굴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끝내 나의 의식의 표면으로 드러나지 못하고 있는, 언어화되지 못하고 찌꺼기처럼 남아 있는 추상이 있다. 나는 최근에서야 그것이 나의 콤플렉스였다는 사실을 알았다. 이것은 나의 욕망과도 깊이 연관되어 있다. 내가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나의 모습을 한번도 마주한 적이 없었다. 말그대로 가상 또는 환상에 의지하지 않았더라면, 아마 나는 살아 남을 수 없었을 것이다. 나의 고백은 한번도 누군가에게 가 닿지 못했고, 타인보다 더 혹독하게 나를 미리 판단하여 차단해버렸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분법적으로 구획된 내면의 역학구도 형성의 가장 큰 원인이 되었다. 심리적 분단이다. 나는 나를 벗어나, 많은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사람들과 어울려 살지 못하고, 자폐적으로 나의 내면 안에 머물러 빗장을 닫아걸고 살았다. 그러한 과정에서 나 스스로도 우리집 벽장에는 내가 숨겨 놓은 엄청난 보물이 있을 거라고 믿게 되었던 것이다. 내 주변 사람들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듯했다. 그런데 어느날 문득 나는 벽장에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을 알게되었다. 그리고 둘러보니 나는 이미 중년이 되어 있었다. 옆에는 나의 사랑하는 아내가 있었고, 엄마, 아빠는 이미 늙어있었다. 나는 모든 것이 너무 슬펐다.

이 글은 모든 것이 엉망이 되어버린 현실의 원인을 '나는 키가 작다'라는 콤플렉스에서 시작되었다고 말하기 위함이 아니다. 나의 무능과 분노의 원인을 '나는 키가 작다'라는 문장에 전가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지금 나에게는 내 삶의 방향을 재설정할 수 있는 지혜가, 아니 용기가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나는 누구'이며, '여기는 어디'인지 더 처절하게 응시해야 한다. 그래서 이 글에서는 어떤 대안을 제시하거나 다짐을 적어두지 않을 것이다. 그런 것이 있을리도 만무하지만, 설령 그런 것이 있다고해도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있는 그대로의 '나'를 긍정하여 수용하는 것 밖에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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