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확진

두 줄

코로나 확진 판정을 받고 일주일간의 자가격리를 마쳤다. 처음에는 그 증상이 몸살 감기와 크게 다르지 않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목이 붓고 등 근육이 쑤신 것 외에는 크게 문제될 것이 없었다. 확진 판정을 받고도 이상하리만치 평온했다. 이렇게 아무렇지 않아도 괜찮은 것일까. 코로나가 막 창궐하기 시작한 2020년 초와 비교해보면 너무 많은 것이 변해 있었다.

코로나 초기 우리 공동체는 많이 우왕좌왕했었다. 낯선 대상에 대한 정보가 전무하다보니 미래를 예측하거나 앞으로 벌어질 일을 통제할 어떤 계획도 가지고 있지 못했다. 이성으로 장악하지 못하는 대상이 눈앞에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 인간은 본능적으로 두려움과 공포를 느낄 수밖에 없었다. 당시의 두려움과 공포는 필시 죽음을 떠올릴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이제 확진 판정을 받고도 안도할 수 있다는 사실은 그만큼 코로나에 익숙해졌다는 말이 될 것이다. 또 익숙해졌다는 말은 그만큼 예측불가능한 상황들이 줄어들었음을 의미한다. 불확실성을 하나씩 줄여가면서 인간은 두려움과 공포를 극복해 온 것이다. 나는 이미 마련된 절차와 매뉴얼에 따라 움직이며 대처해나갔다. 모든 것이 순조로웠고 크게 문제가되지 않았다.

그런데 내 직업이 많은 학생들을 대면하는 일이라는 사실과 지난 주말에 부모님을 뵙고 왔다는 사실 탓에 마음 한구석의 찝찝함이 가시지 않았다. 아내가 연이어 확진되었고 엄마와 아빠도 확진 판정을 받았다. 우리가 아무리 서로 자기 몸을 바탕으로 스스로를 하나의 독립된 개체라고 생각하지만, 우리는 서로의 숨을 나누어 호흡을 할 만큼 강력하게 연대하고 있는 사이였던 것이다.

아무리 ‘나’는 ‘나’이고 ‘너’는 ‘너’라고 생각한다 하더라도 마스크를 착용하고도 끊어낼 수 없을 정도로 우리는 이미 삶을 나누어 공유하고 있는 관계였던 것이다. 과연 모든 일이 나만 잘 하면 되는 것일까. 우리가 악착같이 마스크를 쓰면 쓸수록, 우리는 이미 끊어낼 수 없는 특정 관계나 맥락 속에서 연대하고 있음을 반증하는 것이 아닐까.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