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 밖으로 나가서 지구를 바라보는 기분은 어떨까?

 

우주로부터의 귀환

 

지금까지 (이 글은 1981년 11월부터 「중앙공론」지에 연재된 후 1983년 1월 책으로 출간됨.  이하 동일 - 역자주) 우주를 비행해 본 경험이 있는 사람은 미국의 애스트로넛Astromaut과 소련의 코스모넛Cosmonaut(같은 우주 비행사라고 해도 미국과 소련에서 쓰는 용어가 다른다. 또한 소련의 코스모넛 가운데는 소련인 이외외도 동구권 국가, 베트남 등의 우방국에서 온 우주 비행사가 몇 명 포함되어 있다. 미국의 스페이스 셔틀Space Shuttle에도 곧 유럽의 우주 비행사가 동승할 예정이다)을 합쳐도 100명을 조금 넘는 정도이다(스페이스 셔틀 시대가 오더라도 이 숫자는 해마다 몇 명의 비율로 증가할 뿐이다). 170만 년에 이르는 인류의 역사 가운데 겨우 이 정도의 사람들만이 지구 환경 밖으로 나간 경험을 가지고 있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그들도 지구 환경 밖으로 나간 것이 아니다. 지구 환경에서만 살 수 있는 생명체인 인간은 지구 환경을 떠나서는 살아갈 수가 없다. 그렇기 때문에 우주 비행사들도 우주 공간으로 나갈 때 지구 환경과 함께 나간다. 우주선과 우주복 내부에 지구 환경을 담아서 우주로 나가는 것이다. 지구를 커다란 우주선이라고 한 비유는 타당하지만, 우주선을 작은 지구라고 한 비유 또한 타당하다.

- 다치바나 다카시, 『우주로부터의 귀환』, 전현희 역, 청어람미디어, 2002, p.10.


Gravity, 2013

지구 밖으로 나가서 지구를 바라보는 기분은 어떨까?

우연의 일치인지 『우주로부터의 귀환』을 읽고 있는 요즘, 재개봉한 그래비티를 보았다. 여행을 목적으로 우주로 나가는 시대에 서로 관련된 듯 보이는 구절을 발견해 옮겨보았다. 그리고 다시 영화를 보면, 우주는 이제 더이상 공상과학 속의 대상만은 아닌 듯 여겨진다. 어쩌면 우주라는 조건을 전제하고 인간의 실존적인 조건에 대해서 말하고 싶어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아니, 이제는 충분히 그렇게 해도 될거라 생각된다.

지구 밖으로 나가 지구를 바라보는 기분은 어떨까? 지상에서는 그 누구도 지구의 전체를 바라본 자가 없으니 더욱 궁금해진다. 지구에 사는 사람들과 인류의 역사를 살펴볼때, 지구 밖으로 나가본 사람이 100여명이 조금 넘는다는 사실은 매우 흥미롭다. 그 만큼 우주는 아직 인간이 경험으로 파악하지 못한 낯선 공간이다. 영화 속에서는 고정된 카메라의 위치가 감지되는 곳으로 그려지지만, 우주는 "상하 · 종횡 · 고저가 없는 세계"이다. 끝없이 멀어지는 맷 코왈스티(조지 클루니)의 죽음을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공간이다. 절벽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천 길 낭떠러지에 놓여있는 인간의 모습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조금 놀라운 사실은 지구 밖으로 나가 지구를 바라본 자들의 상당수가 종교에 귀의했다는 사실이다. (이 책이 1983년도에 출간된 책이라는 사실을 고려할 때, 우주에 대한 오늘날의 실감과 다소 차이가 있다고 판단된다.) 아직 인간의 경험이 현격하게 부족한 만큼, 그 경험을 언어로 소화할만한 인식이 부족해서였을까. 어떤 대상의 실체를 확인하고 말문을 닫아버린 사람들처럼, 지구 밖으로 나가 지구를 바라본 사람들의 체험이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것 같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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