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인 욕하기

정치인들을 욕하고 있다보면, 어느 순간 그들에게 놀아났다는 사실에 몹시 불쾌해진다. 나의 분노와 원망까지도 그들의 전략에 의해 기획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지울 수 없기 때문이다. 

사실 나는 실용주의를 신뢰하지 않는다. 중도주의는 더더욱 믿음이 가지 않는다. 기계적 중립을 정의 또는 합리적이라 말하는 것에 동의하지 않는다. 실제 그 누구에게서도 중도적인 면모를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버스 요금이나 수도세를 내리는 것과 같이 직접적인 이익에 대해 편향적일 수밖에 없는 개인이 스스로를 가리켜 중도라고 말하는 것은, 자신은 합리적 판단이 가능한 존재라는 환상에 지나치게 사로잡힌 결과로 여겨진다. 특히 미래에 대한 기대 또는 전망은 각자 자기자신의 가치관에 따라 편향적일 수밖에 없지 않은가.

그럼에도 정치인은, 작가가 많은 사람들로부터 공감받을 수 있는 작품을 쓰는 것과 같이, 한 명이라도 더 자기 편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스스로 하나의 상징이 되거나, 의미있는 기표가 되려고 노력한다. 그들의 자의식은 단순하고 편협한 모습을 보이기도 하지만, 작가의 그것보다 훨씬 유연하여 과감한 전략적 선택을 단행한다. (그 선택이 진실인지 거짓인지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어디까지가 자기 편이고, 어디부터가 적인지 명확하게 알고 행동한다. 그러니 자신을 향한 욕을 들어야 할 때와 듣지 말아야 할 때를 명확하게 알고 발언하고 행동한다. 물론 그렇게 해도 공동체 내의 모든 구성원들로부터 지지를 받는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지만 말이다. 

그렇다고 이 글이 정치에 대한 무관심, 냉소주의를 지지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의 삶은 이렇게나 찌질한데, 정치적 견해를 표현하는 일에는 '쿨'한척 냉소를 보낼 수만은 없기때문이다. 이후의 방법에 대해서는 다른 글에서 논의해보기로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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