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와 힐링에 익숙한 세대

위로와 힐링의 담론에 익숙한 세대가 있다. 투표권이 있으니, 모두 그들의 눈치를 보면서 전전긍긍하는 모양새다. 그들의 주변을 살펴보면 위로와 힐링의 수사들이 넘쳐난다. 항상 응원받고, 지지받는다. 그들의 주변에 있는 사람들은 끊임없이 당신은 소중한 사람임을 강조하고 있으며, 오늘 하루 수고했다고 위로를 건넨다. 항상 이쁜 글씨체와 감성적인 일러스트로 위로와 힐링을 전한다. 정말 아름다운 세상이다. 아~, 이 아름다운 세상에서 사람들은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목숨을 끊는 일에 열정적이다. 열정은 언제나 아름다운 법이지.  그런데 가만히 듣고 있다보면 뭔가 이상한 기분이 든다. 왜, 이렇게까지 빨아댈까, 하는 생각. 아무리 위로와 힐링이 산업이 되었다고하지만, 이렇게까지 그들을 빨아대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러면 그들은 위로받고 힐링했으니, 다시 일어나 열심히 달려갈 기세다. 그래도 아직까지 세상은 믿을만하다고 믿고 있는 것인가? 그래서 그들은 가끔 감동의 눈물을 흘리기도 한다. 세상은 이렇게 따뜻하게 나를 지지해주는데, 나는 열심히 하지 않아서 항상 저성과자에 머물러 있다고 생각한다. 스스로 자신에게 채찍질을 가하며 자신을 벼랑끝으로 몰아붙힌다. 그러나 그들이 말하는 '세상'은 사실 실체가 없다. 대부분의 위로와 힐링이 산업이 되어버린 마당에, 위로를 받으며, 자연스레 위로받는 사람이 되어버린 자신의 세대가 딱하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그래서 그들은 경쟁을 '공정'이라는 말로 합리화한다. 자신은 경쟁에서 언제나 패자의 역할을 자처하면서도 위로와 힐링의 담론 속에서 얼어붙은 마음을 따뜻하게 녹인다. ㅋ 웃기지 않은가? 그래서 그들에게서 역사의식을 발견하기란 쉽지가 않다. 미래에 대한 전망을 요구구하거나 제시하는 일은 꼰대들의 일이 되어버렸다. 무엇보다 위로를 거부하고 당당하게 함께 분노할 수 있기를 희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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