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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S/시집

[시집] syzygy / 신해욱(문학과지성사, 2014)

syzygy / 신해욱(문학과지성사, 2014)

체인질링

 

영물들에게 둘러싸여
눈부신 하룻밤을 보냈습니다.

동심원들이 찰랑거렸습니다.

깊이
깊이
아주 깊은 데까지 젖은 돌이
이쪽을 물끄러미 보고 있었습니다.

바꿀 것이 있는데

나의 아름다운 악몽은 조금씩
밝아오고 있었습니다.

지평선이 없었습니다.


시집 『생물성』과 마찬가지로 신해욱의 시집은 시집의 첫번째 시에서 이후 시에 대한 많은 단서를 제공해준다.

김소연 시인의 설명처럼(「헬륨 풍선처럼 떠오르는 시점과 시제」, 『생물성』, 문학과지성사, 2009. 발문 中) 신해욱의 시는 연과 연 사이에 깊은 계곡이 흐른다. 아득한 시차가 느껴지기도 하고, 앞 연의 의미가 뒤따라 오는 연으로 자연스럽게 연결되지 않아, 의미의 이해가 지연되기도 한다. 위의 작품은 '영물 - 동심원 - 젖은 돌 - 악몽 - 지평선', 다섯개의 단어로 구성되고 있는데, 단어의 의미만으로는 필연성을 발견하기 어렵다. 

그것보다는 이미지를 통해 연과 연 사이의 깊은 거리에 읽는 사람의 상상력을 채워넣을 수 있도록 배려한다. 

신해욱의 시를 가리켜 '간결하다'라고 생각했던 것은 바로 이때문이다. 이는 물리적 길이가 짧음을 의미하지 않는다. 또 그 간결함은 할 말이 없다거나, '문득'이라는 부사를 통해 시인의 의도를 진술문에 집약시키는, 그런 '류'의 간결함이 아니다. 오히려 눈물에 번지는 별자리처럼 동심원을 그리며, 인접하는 이미지가 서로 간섭하며 새로운 이미지를 만들어낸다. 그래서 신해욱의 간결함은 그녀의 작품에 대한 독자의 몰입도, 매혹되고 사로잡힌 정도를 의미하는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