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 혼자 가는 먼 집 / 허수경(문학과지성사, 1992)

혼자 가는 먼 집 / 허수경(문학과지성사, 1992)

 

혼자 가는 먼 집

당신……, 당신이라는 말 참 좋지요, 그래서 불러봅니다 킥킥거리며 한때 적요로움의 울음이 있었던 때, 한 슬픔이 문을 닫으면 또 한 슬픔이 문을 여는 것을 이만큼 살아옴의 상처에 기대, 나 킥킥……, 당신을 부릅니다 단풍의 손바닥, 은행의 두 갈래 그리고 합침 저 개망초의 시름, 밟힌 풀의 흙으로 돌아감 당신……, 킥킥거리며 세월에 대해 혹은 사랑과 상처, 상처의 몸이 나에게 기대와 저를 부빌 때 당신……, 그대라는 자연의 달과 별……, 킥킥거리며 당신이라고……, 금방 울 것 같은 사내의 아름다움 그 아름다움에 기대 마음의 무덤에 나 벌초하러 진설 음식도 없이 맨 술 한 병 차고 병자처럼, 그러나 치병과 환후는 각각 따로인 것을 킥킥 당신 이쁜 당신……, 당신이라는 말 참 좋지요, 내가 아니라서 끝내 버릴 수 없는, 무를 수도 없는 참혹……, 그러나 킥킥 당신

- 『혼자 가는 먼 집』, 문학과지성사, 1992, 27쪽. 


사랑에 빠지면 시인이 된다는 말이 있지만, 이는 반은 맞고 반은 틀리는 말이다. 눈 앞의 대상을 가장 깊숙하게, '찐'으로 만나는 경험이라는 점에서, 대상에 대한 예찬과 각종 찬사를 감당 불가능한 수사들로 늘어놓은 작품을 시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정확하게 말해서 이는 사랑에 빠진 자기자신에게만 인정되는 작품이다. 오히려 이런 작품들은 자신 이외의 다른 사람들의 공감을 얻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지금 사랑에 빠져있는데, 과연 시를 쓸 수 있을까? 눈 앞의 '너' 이외에는 그 어떤 것도 눈에 들어오지 않는 상황에서, '시를 쓰는 것이 가능하겠느냐'는 말이다. 사랑을 나누고 있는 그 순간은 이 세상에 '사랑'보다 더 좋은 것이 있을 수 없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그 순간에 사랑을 잠시 멈춰둔채 시를 쓰고 있다? 쉽게 납득이 되지 않는다.

시는 바로 그런 사랑에서 분리되어 나왔을 때, 완벽한 충만함에서 각성되는 순간에 쓰여진다. 허수경의 시처럼, '너'에게 건너가 '너'와 완전히 하나가 되었다가, 다시 '나'의 자리로 돌아왔을때 말이다. 그 순간에는 더이상 '너'가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나를 버렸다고 미워할 여력조차 없다. 그 순간에는 세상 구석에 버려져 질질 짜고 있는 '나' 이외의 그 어떤 것도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그렇게 혼자서 울고 있는 '나'를 바라볼 수 있을때, 우리는 비로소 사랑에 관한 시를 쓸 수 있는 것이 아닐까?

그런 의미에서 한 번의 사랑이 지나간 후, 버림받은 자신을 위로하기에 허수경의 『혼자 가는 먼 집』만한 시집이 또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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