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 태양의 연대기 / 장석원 (문학과지성사, 2008)

태양의 연대기 / 장석원(문학과지성사, 2008)

출렁이는 어둠 속에서 아이가 보인다 쌀알처럼 반짝이는 아이의 발끝에서 뿌리가 나오고 손가락에서 새순이 돋고 겨드랑이에서 덩굴이 뻗어 나온다 그때 바깥은 가을이 되고 바람은 차가워지고 한꺼번에 불어오는 바람 광폭했다 두 젖꼭지는 땅을 뚫고 오르는 싹이고 입으로는 열매를 뱉고 귀로 가지를 내보내고 아래로는 은하수가 흘러나간다 밤마다 구멍으로 별이 침입하고 바람이 혀 내밀어 아랫도리를 훑었다 누가 빛보다 빠르게 소멸했는가 누가 빛보다 빠르게 다가와 나와 마주쳤는가 꽃바지 꽃바지 입은 그녀 입벌리고 잠들었는데

-  「하남 가는 심야 좌석 버스의 떡 장사」 中


자칫 장석원의 시를 읽다 보면 시에 삽입되거나 불쑥 불쑥 간섭하는 링크들이 몹시 귀찮게 느껴질때가 있다. 그러면서도 각각의 문장이 만들어 내는 이미지와 그것들이 구축되는 방식의 일관성을 발견하게 되면 놀랍기까지 하다. 심지어 그의 작법은 시가 어떻게 구성되고 있는지 상상할 수 있게 해준다. 나는 이것이 매우 현대적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시적 전략으로도 매우 성공적이라 생각한다. 내가 그의 시를 좋아하고 즐겨 읽는 이유는 이러한 발화가 매력적이라 여겨지기 때문이다. 무의식적 자동발화 같은 면이 있으면서도, 체계와 일관성을 갖추고 있는 작품들. 그리하여 전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아직 언어화되지 못한, 될 수 없는, 서정적 감정들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나는 시인의 발화법에 숨겨진 눅눅한 감정들을 따라가며 『태양의 연대기』 읽었다. 나는 시인의 최초의 시작이 서정으로부터 출발되었을 것이라 강력하게 믿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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