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REVIEWS/시집

[시집] 우주적인 안녕 / 하재연(문학과지성사, 2019)

우주적인 안녕 / 하재연(문학과지성사, 2019)

하재연의 시에서 “나는 길게 누워 있는 섬 위의 저녁 구름에 / 서린 분홍 같은 것이었다가”(「한 사람」)와 같은 구절은 같은 작품의 “미래에서 자고 있는 내 아이의 꿈에 / 들려오는 자장가 / 들어본 적 없이 떠오르는 / 노래의 끊어진 마디들”이라는 구절과 발화 방식이 다르다. 언어가 결합되는 과정에서 의미가 파생되는 원리가 다르게 느껴진다는 것이다. 독자의 기억을 매개하는 언어가 될 수도 있고, 일상 또는 사전적 의미에 기대어 특정 의미를 조립해내고 있는 문장일 수도 있다.

의도적으로 낯설게 결합하고 있는 “나의 목소리는 / 한없이 당신의 목소리와 겹쳐져서 / 이어지다가 시작된 철자로서 끝이 나는 나의 이름을 / 허공에 그리며 사라져갔습니다.” (「해변의 아인슈타인」)와 같은 문장은 실재하지 않음에도, 선명한 이미지를 보여준다. (세심하게 시집을 읽다보면 더 적합한 예를 찾을 수도 있을 것이다.) 또한 이러한 문장은 “사랑을 나누는 순간 어디선가 / 부적격자들은 잉태된다”라는 단정적인 진술과도 질적으로 다른 문장이다.

단순히 묘사와 진술의 차이가 아니다. 이는 각각의 수사적 방법으로 환원되지 않는, 시속 문장들만의 고유한 존재방식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처럼 각각의 문장들이 지니고 있는 질적 차이들을 감별하며 시를 읽는 것은 매우 즐거운 일이다. 그러나 한편으로 각각의 문장이 지니고 있는 질감들은 섬광처럼 번뜩인다거나, 일종의 분위기처럼 독자가 서있는 자리를 환하게 감싸안는 기분으로 감지되기때문에 매우 주관적인 읽기방식이다.

이렇게 읽다보면 시집의 맨 앞, 「양양」이라는 작품의 말하기 방법이, 같은 시집의 다른 작품들의 그것과 많이 다르다는 강력한 인상을 갖게 된다. 


양양

열 마리 모래무지를 담아두었는데
바다로 돌려보낼 때
배를 드러낸 채 헤엄치지 못했다고 했다.

집에 와 찾아보니
모래무지는 민물고기라고 했다.

누군가의 생일이라 쏘아 올린 십 연발 축포는
일곱 발만 터져 행운인지 불운인지 모르겠다고

노란 눈알이 예뻤는데

물고기는 눈을 감지 못하니까
죽어서도 눈을 감지 못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