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 생물성 / 신해욱 (문학과지성사, 2009)

생물성 / 신해욱(문학과지성사, 2009)

축, 생일

 

이목구비는 대부분의 시간을 제멋대로 존재하다가
오늘은 나를 위해 제자리로 돌아온다.

그렇지만 나는 정돈하는 법을 배운 적이 없다.
나는 내가 되어가고
나는 나를
좋아하고 싶어지지만
이런 어색한 시간은 도대체 어디서 오는 것일까.

나는 점점 갓 지은 밥 냄새에 미쳐간다.

내 삶은 나보다 오래 지속될 것만 같다.


끝나지 않는 것에 대한 생각

 

누군가의 꿈속에서 나는 매일 죽는다

나는 따뜻한 물에 녹고 있는
얼음의 공포

물고기 알처럼 섬세하게
움직이는 이야기

나는 내가 사랑하는 것들을
하나하나 열거하지 못한다

몇 번씩 얼굴을 바꾸며
내가 속한 시간과 
나를 벗어난 시간을
생각한다

누군가의 꿈을 대신 꾸며
누군가의 웃음을
대신 웃으며

나는 낯선 공기이거나
때로는 실물에 대한 기억

나는 피를 흘리고

나는 인간이 되어가는 슬픔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응답이 아닌 시가 있을까? 일상에서의 말하기, 글쓰기와 달리 '시쓰기'는 시를 쓰고 있는 내내, '시를 쓰고 있는 내가 여기에 있다'는 사실을 끊임없이 지각하게 만든다. 그래서 모든 시는 결국 시를 쓰고 있는 자신을 전제해야 가능한 작업이다.  신해욱의 시집 『생물성』은 '시를 쓰고 있는 나'가 존재하는 다양한 방식을 보여준다. 시집 속에서 '나'는 '나'이기도 하다가도 '너'가 되기도 한다. '나'는 다시 내가 되기도 하는데, 자세히 살펴보면 어제의 '나'이거나 내일의 '나'가 된다. 나'는 처음부터, 이미 주어진 어떤 존재가 아니라, 내가 마주하고 있는 많은 타자들과의 관계 속에서 의미를 구성해나고 있는 주체라 할 수 있다. 조금더 정확하게 말하면, 그녀의 시는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응답이 아니라,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고민, 문제의식을 대상으로 기획된 시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는 그리 간단한 작업이 아니다. 나도 알지 못하는 초월적 영감에 의해 작품이 쓰여지는 낭만주의 시대도 아닐뿐더러, 어떤 예술가도 자신에 대한 의식적 자각없이, 자신이 마주하고 있는 세계를 표현할 수는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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