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 무슨 심부름을 가는 길이니 / 김행숙 (문학과지성사, 2020)

무슨 심부름을 가는 길이니 / 김행숙 (문학과지성사, 2020)

의식의 흐름을 따르며


네가 나를 찾아서 돌아다니는 장소들이 궁금해.
너는 어디에 있는 나를 기억할까.
너의 상상력은 나를 어디까지, 어디까지 데려갈 수 있을까
나를 상상하는 너를 상상하면 나는 네 주위를 하염없이 맴돌 수 있을까. 너를 상상하는 나를 상상하면 너는 내 품으로 걸어들어올 수 있을가.
너는 나를 물끄러미 들여다본 적이 있었다, 한참을. 그리고 모르는 사람이라고 중얼거렸지.
미안합니다, 너는 사람을 잘못 봤다고 몹시 부끄러워했어.
내가 사람 모양을 하고 있구나, 그때 나는 생각했지. 
너는 왜 부끄러울까
그때 너는 다른 시간 속으로 후다닥 뛰어갔다.
그때 나는 너의 등 뒤에서 비처럼 쏟아졌다.
내가 비 모양을 하고 있구나, 그런데 내 모습이 그렇게 변할 걸 사람들은 어떻게 알았을까.
기다렸다는 듯이 사람들의 머리 위로 검은 우산이 둥실둥실 떠다니기 시작했어.
사람들은 거의 젖지 않았어.
그리고 너는 그날 우산도 없이 빗속에서 나를 찾으러 어딜 그렇게 그렇게 쏘다녔을까.

- 「의식의 흐름을 따르며」 전문

 


김행숙의 시가 재미있게 읽히기 시작한 것은 『에코의 초상』부터였다. 『에코의 초상』부터 분명 시인의 언술 방법이 바뀌고 있다고 판단했다. 묘사를 통한 재현이 줄고, 진술을 통해 하고 싶은 말을 보다 과감하게 전달하고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비유의 수사가 현저하게 줄고, 경우에 따라서는 자동화된 말하기로 의식이 흘러가는 과정을 직접적으로 보여주는 작품도 있다. 그래서 위에서 소개하고 있는 작품 「의식의 흐름을 따르며」를 나는 일종의 선언문처럼 읽었다. 그리고 이것은 단순히 수사적 변화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근본적인 구조의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이것은 김행숙에게만 해당하는 문제는 아니라고 본다. 거의 대부분의 시인들은 시 속에서 자유도가 증가하는 방향으로 스스로를 갱신해간다. 이것은 겉으로 드러나는 수사적 표현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시인의 세계인식 방법, 발화습관, 호흡 등 인위적인 문어의 질서에서 구어의 질서로 옮겨가는 것까지를 포함한다고 말하고 싶다. 여기에서 이렇게 대충 말할 수 있는 내용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기회가 된다면 생각을 좀더 가지런히 정리해서 업로드하기로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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