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 나는 오늘 혼자 바다에 갈 수 있어요 / 육호수 (아침달, 2018)

나는 오늘 혼자 바다에 갈 수 있어요 / 육호수

파도는 내가 버린 얼굴들이었으므로
나의 해변은 항상 모래성보다 먼저 폐허였다
알아들을 수 없는 농담처럼
내게 맞지 않는 신발들만 밀려왔다

                                        - 「해변의 커튼콜」 中

육호수의 시집을 읽었다. 2016년 대산대학문학상 수상자이다. 파란색 시집이 바다같아서 투명한 바다를 들여다보는 듯한 기분이들었다. 시집을 읽을때마다, 해당 시집이 가지고 있는 고유성을 찾는데 골몰한다. 그것은 다른 시집과 구별되는, 해당 시집만의 고유한 '차이'라 할 수 있겠다. 이를테면 무엇이 이 시집을 육호수의 시집이 되게했을까. 육호수의 시집을 육호수의 시답게 하는 것은 무엇일까? 나는 이런 것들이 궁금했다. 

과연 이러한 고유성은 어디에 있을까? 시인이 구사한 어휘에 있을까? 그가 시에서 사용한 어휘를 나열한 후에 그 의미를 추적 분석하는 것으로 그 고유한 '차이'를 파악할 수 있을까? 이는 충분히 가능한 일이지만, 그 과정의 타당성을 나는 신뢰하지 않는다. 어떤 시편들도 시인이 시의 처음부터 끝까지 완전히 장악한 상태에서 시를 쓸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기때문이다. 어떤 징후처럼 발견되는 사항들을 토대로 발화의 기원을 탐색하는 일이 생각처럼 단순하지만은 않은 일이다.

도대체 시인들의 작품들을 시인별로 또는 작품별로 변별해내는 결정적 자질은 무엇일까. 나는 꽤 오랜 시간을 고민했다. 미사시간에 강론하는 사제의 모습이 떠오르기도 했고, 구원을 기다리는 순례자의 이미지가 그려지기도 했다. 종교적 이미지가 전면에 배치되지는 않았지만, 영성으로 가득찬 염결주의자의 기도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거룩하지 않은 시어들로 만드는 거룩한 일상같은 느낌. 시인의 말처럼 오늘밤에는 나도 기도하고 잠자리에 들어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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