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노의 사이즈

사실 나는 욕을 하고 싶어서 글을 쓴다. 생각해보면 지금까지 상대방의 얼굴을 보고 크게 소리를 질러 본 적이 없다. 욕은 더더둑 어려운 일이었다. 그렇다고 나에게 분노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운전을 하거나 샤워를 할때면, 나의 분노는 알수 없는 대상을 향해있을 때가 많았다. 그런데 이 얼마나 우스꽝스러운 모습인가? 아무도 없는 곳에 숨어서, 아무도 듣지 못하는 욕을 하고 있으니 말이다. 이경우에도 욕이 성립되는지 궁금할 뿐이다.

이것은 매우 비정상적인 행동이다. 겉으로 보기에 멀쩡해보여도 내 속에는 오염되고 뒤틀린 심사로 가득하다. 밀폐된 상태로 내면에 차곡차곡 눌러놓다 보니, 유해가스가 진동하고 있는 느낌이다. 어쩌면 입술이 자주트고, 양치할때마다 잇몸에서 피가 흐르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이것은 나만의 잘못은 아닌 것 같다. 우리 집안은 대대로 분노에 익숙하지 못했다. 입밖으로 욕을 꺼내기 보다, 속으로 삼키는 데 익숙한 가풍을 가지고 있었다. 아마 간장이나 대장의 굴곡 어디쯤에는 누대에 걸쳐 축적되어 있는 분노의 계곡이 있을 것이다. 오랜 세월 층층히 퇴적된 지층이 융기와 침강을 거듭하고 있을 것이다. 이것은 지극히 합리적인 의심이다.

더욱이 불합리를 마주하고도 먹고 살 궁리에 골몰하고 있는 나의 얼굴을 맞은 편 거울 속에서 마주할 때면, 그 치욕스러움을 견딜 수 없어 끝없는 우울에 빠져들고 만다. 그런데 이 ‘우울’이 몹시 무섭다. 아무것도 할수 없게 만들어 버리기 때문이다. 나에게서 방향이 제거되고, 역동성이 사라진다. 이제 갓 삶을 본격적으로 시작하는 시기에, 너무 잔인하지 않은가. 이미 적진 깊숙이 들어와 물러설 수도 없고, 더 나아갈 수 없는 그런 상황. 그야말로 진퇴양난. 내가 넘어설수 없는 거대한 벽에 가로막힌 순간이다.

그때 사람들은 눈앞의 거대한 장애물, 벽이 몹시 야속하다고 생각하겠지만, 사실 나에게 벽은 안중에도 없다. 벽은 눈에 들어오지도 않는다. 그 순간만큼은 도약할 수 없는 나 자신이, 나의 무능함이 보일뿐이다. 고개를 돌려도, 거대한 벽에 압도되어 한쪽 구석에 움츠리고 쭈구리가 되어 있는 나의 비참함이 보일뿐이다. 이렇듯 이미 내안에 엄청난 규모의 분노와 비참, 굴욕과 상실이 가득한데, 기껏 210 X 297 정도의 크기로 환산이 가능하겠는가? 어림없는 이야기겠지만, 그 모든 분노를 여기에 그대로 옮겨적을 수 있다면 좋겠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 글을 쓴다. 하고 싶은 말이 많을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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