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 내가 사랑한 시인들 - 이성복, 최승자, 황지우, 기형도
- REVIEWS/시집
- 2021. 9. 17.
이건 지극히 개인적인 취향에 대한 이야기이다.
시집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하는 경우, 나는 항상 정해진 몇권의 시집으로부터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그건 나의 출생연도와도 관계가 깊다. 나의 20대가 어떤 시대를 통과하고 있ᅌᅥᆻ으며, 당시의 시인들은 습작기에 어떤 시집들을 주로 읽었는가는 매우 중요하기 때문이다. 공교롭게도 내가 좋아하는 시집은 모두 같은 출판사의 시집들이다. 여기에 네권을 추려놓았는데, 모두 문학과지성사의 시집들이다. 내가 해당 출판사에 애정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오히려 그 반대다.) 한자리에 모아놓고 보니, 표지디자인의 색과 형식이 모두 동일하다. 이는 100 단위로 나누었을때, 동일한 번호군에 분포하고 있다는 얘기다. 13, 16, 32, 80. 그중 80번은 1989년 5월 15일 인쇄된 초판본이다. 일별해 보면 다음과 같다.
이성복, 『뒤구는 돌은 언제 잠 깨는가』, 문학과지성사, 2004.
최승자, 『이 時代의 사랑』, 문학과지성사, 2002.
황지우,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 문학과지성사, 1999.
기형도, 『입 속의 검은 잎』, 문학과지성사, 1989.
기형도 시집은 초판본이지만, 나머지 시집은 위에서 적고 있는 발행년도를 기준으로 할 때, 약 30~40쇄 정도 발행한 상항이다. 내가 사랑한 시집들은 그만큼 인기가 있었던 시집들이다. 이것은 한편으로는 시집에 대한 나의 안목이 그리 개성적이지 않다는 말이기도 하다. 맞는 말이면서도 한편으로는 모든 시가 전위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으로서 항변하고 싶은 부분이기도 하다. 한사람은 이미 죽은 사람이고, 나머지 셋은 살아있지만, 아직 한번도 만나본 적 없는 사람들이다. 그럼에도 나의 20대는 이들의 시로 인해서 어두웠던 것 같다. 아니, 어두운 척을 했던것 같다. 쓸쓸함이 트레이드마크처럼 나의 무표정한 얼굴에 드러나길 고대했었다. 그러나 지금 생각해보면 그것이 내가 통과한 20대의 시대적 분위기는 아니었다. 내가 통과한 20대의 시대적 분위기는 위의 네권의 시집 속의 분위기보다 밝았다. 훨씬 발랄했다. 문제는 항상 그렇지 못한 '나'였다.
네권의 시집을 모아놓고 보니, 공교롭게도 이들은 모두 SKY 출신의 시인들이다. 문창과 출신이 아니라는 점도 다소 낯설게 느껴졌다. (나는 SKY도, 문창과도 아니니 나의 취향에 대해 변론은 필요없을 듯하다.) 내가 이 오래된 시집들을 다시 꺼낸 것은 이 시집들을 통해 나에게 물어보고 싶은 것이 있을 것 같아서다. 나는 왜 이들의 작품에 매혹되어 한 시절을 보냈을까? 혹시 이 시집들을 만나지 않았다면, 좀더 발랄하고 환하게 웃을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지 않았을까? 그 점은 지금생각해보 몹시 아쉬운 부분이다. 그러나 그들의 우울과 쓸쓸함에도 (일단은 거칠게 '우울'과 '쓸쓸함'으로 적어두겠다.) 분명 이유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여기에서는 그 이유를 이야기 하고 싶은 것은 아니다. 오히려 나는 그들이 가장 약한 개인이 될수 밖에 없었다는 사실이 마음에 들었다. 스치기만 해도 빨갛게 트러블이 일어나는, 가장 여린 살갗 같다는 생각이 있었다. 아주 잠깐 환하게 나타났다가 이내 사라지는 능동적인 주체의 얼굴같다는 생각.
특히 나는 그들의 언어가 결합하는 방식을 좋아한다. 종결어미에서 전해오는 정서를 사랑한다. 물론 그들이 해결하지 못하고 다음 세대까지 넘겨준, 그러니까 한참의 시간이 흐른 후에 내가 사로잡힌 앞 세대들의 시대적 분위기에 대해서는, ... 판단보류! 나의 20대가 조금만 더 발랄하고 명랑했으면 어땠을까 고민을 하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내가 사랑했던 시인들이다. 그래서 내가 시집에 대한 나의 취향이나 기호를 이야기할때면 항상 가장 앞에 놓고 이야기 하는 시인들이다. 기회가 된다고 해도 절대 만나지 말아야지.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