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의 의미

옹기종기 의자들

무서운 질문이다. 가장 최초의 질문이며, 마지막 순간까지 지속되는 질문, 하나의 문장으로 모든 것을 환기시키는 질문. 정체를 묻고 있는 정적인 질문처럼 보이지만 실천을 요구하는 역동적인 질문! 환상을 깨고 날것을 호명하는 질문, 강력한 명령문. 

 

   나는 주로 힐링과 위로의 담론 속에서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경험했다. 그것은 주로 나의 외부에서 나를 향한 질문이었다. 나에게 그것은 특정 교육과정이나 마케팅 차원에서 유통되는 광고 카피같은 문구로 이해되었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은 나의 환상을 박살내는 잔인한 질문이 되었다. 내가 거대한 벽을 마주하고 있을 때, 나의 내면에서 들려오는 질문이었다. 벽을 마주하고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있는 찌질한 나의 모습을 확인했을 때, 탄식처럼 들려오는 말이었다. 강력한 어조로 나의 삶을 끊임없이 수정해주는 명령문이었다.

   나는 지금 내 힘으로 넘을 수 없는, 나를 가로막고 있는 벽을 마주하고 있지만, 사실 벽 따위는 눈에 들어오지도 않는다. 내가 응시하고 있는 것은 벽 앞에서 울고 있는 한없이 작고 초라해진 나의 뒷모습이다. 구석에 쭈구리고 앉아 울고 있는 나의 실체. 나는 나의 고백을 들어주지 않은 그녀가 밉다거나, 나를 차버리고 떠나간 상대를 증오하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처음부터 나의 관심 대상이 아니었다. 내가 마주해야 하는 것은 버림받고 구석에서 울고 있는 나의 모습이다. 자신의 매력없음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아야 하는 것만큼 잔인한 고통이 또 있을까. 

   어쩌면 나는 물질이라 할 수 있는 몸에 기반해 존재한다기보다, 이러한 악조건 속에서만 가끔 등장하는 하나의 현상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니 내 손으로 만질 수 있는 나의 몸은 아직 완전한 ‘나’라고 할 수 없는 ‘나’의 모습이다. 그렇게 가끔 등장하는 나를 만날 때, 나는 한뼘씩 성장한다. 그러면 나는 이미 지나버린 시절의 나의 말과 행동이 떠올라 얼굴이 화끈거린다. 이름하여, ‘현타’. 그렇지만 나는 ‘현타’를 사랑한다. 매순간 내가 살고있는 현실을 자각하게 하며, 주체로 살고 있는지 묻는다. “난 누구?, 여긴 어디?” 간단명료한 질문으로 나를 무너뜨리고 다시 일으켜 세운다. 끊임없이 나를 내가 살고 있는 ‘지금·여기’로 강제소환하는 질문인 셈이다.

   그러나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나는 강력한 환상 속에서 살았다. 나는 이것이 몹시 절망스럽다. 나의 청춘이 나를 좀먹는 데 바쳐졌고, 지금 나는 매우 위태로운 지반 위에 남겨졌다. 내가 만들어 놓은 이상적인 나의 모습과 현실의 나의 모습을 구분하지 못했다. 아니 구분하려하지 않았다. 어느 순간부터 삶은 나쁜 머리로 어려운 수학문제를 푸는 것처럼 힘에 부치는 일이 되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어떤 문제에서도 답을 구하지 못하고 있는, 머리 나쁜 나의 모습을 마주해야 했다. 무엇 때문에 이렇게 되었을까? 생각해보면 나는 한 번도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던져본 적이 없었던 것이다.

   나는 바로 이 부분에 대해서 글을 쓰고 싶은 것이다. 구체적으로 말하고 싶은 것이다. 너무 쉽게 일반화시켜 버리는 과정에서 사라지는 나의 감정들을 위로하고 싶은 것이다. 내가 겪어온 우울과 불안의 실체를 마주하고, 달래주는 밤이 되었으면 한다. 너무 오랜만이다. 아니, 사실 처음이다. 한번도 내가 누구였는지 나에게 물어본 적이 없었다. 앞으로 할 말이 많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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