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튜브를 잘 뒤지다보면, 가끔 고전 영화의 전편들을 발견할 때가 있다. 그런데 소위 우리가 고전이라 칭하는 옛날 영화들은 시간 선후 관계에 따른 '낡음'이 없다. 나는 이러한 고전 영화가 내가 살고 있는 '지금·여기', 오늘날의 영화가 등장하기 까지 겪어야 하는 '과정'으로 보지 않는다. 다시 말해, 완성태를 향해가는 미성숙한 중간 단계의 영화가 아니라, 각각의 작품마다 완결성을 지닌, 하나의 새로운 '형식'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 새로운 영화적 형식이 오랜 시간을 통화하여 영화가 살아남는 방식이라 생각된다. 구성은 단순하지만, 그 단순함에 연루되어 있는 인물들의 욕망은 그리 단순하지 않다. 무의식 속, 언어화되지 않은, 인간의 맨 얼굴은 마주하기 불편하면서도 오래동안 영화를 기억하게 하는 힘이 있..
어떤 등장은 매우 인상적이다. 등장 자체가 하나의 의미가 되기 때문이다. 이후에 등장하는 많은 시집들을 자신의 영향권 안에 두면서 자신은 진화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어떤 변화를 시도하기 전에 그는 닫힌 세계가 되었다. 시집에 대한 해설은 여기저기 넘쳐나니 궁금한 사람은 직접 찾아읽어보길 권한다. 나는 여기에 지극히 개인적인 감상을 기록하고 있을뿐이다. 사실 나에게는 문장을 연습하는 몇가지 방법이 있다. 그중 하나는 나의 문장이 모국어의 문법을 벗어나지 못할때, 황병승의 시집을 읽는 것이다. 평론가들이 언급하는 시 속, 다양한 주체들은, 이미 어디에나 있었다. 이장욱이 말하는 '고무 찰흙 주체'는 이미 오래전부터 존재했고, 많은 예술 장르를 거쳐 드디어, 마침내 시라는 장르 속에 거처를 마련했다. 이 '..
나의 러시아 문학은 ‘고리끼’의 작품 『어머니』로부터 시작된다. 그 사이 체홉과 고골이 있었고, 투르게네프와 푸쉬킨도 있다. 그중 도스토예프스키의 『죄와 벌』과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는 단연 손에 꼽는 작품이다. 그래서 도스토예프스키는 좋아하는 작가 중에 한명이기도 하다. 그러나 내가 이야기 하고 싶은 것은 러시아 소설을 접할때마다 발견하게 되는 관습적 표현들에 대한 것이다. 거의 매번, 페치카 위에서 끓고 있는 사모바르가 있었고, 타르 냄새가 진동하는 낡은 건물이 있었다. 그리고 그 안에는 두꺼운 외투를 걸쳐입고 무엇인가 정서하고 있는 하급관리가 있었다. 그들은 거의 전형적인 등장 인물군이었다. 나의 『가난한 사람들』 읽기는 이러한 전제 하에서 시작했다. 이 작품은 가난한 중년의 하급 관리 제부쉬낀이 ..
Sherlock Jr, 1924 버스터 키튼은 찰리 채플린과 함께 무성영화시대의 한 축을 담당했던 배우이자 감독이다. 찰리 채플린만큼 알려지지 않았지만, 오히려 많은 씨네필의 지지를 받고 있는 배우가 아닐까. 찰리 채플린이나 버스터 키튼의 '무성'영화를 보고 있으면, '무성'이라는 말이 영화의 미발달 상태, '초기'라는 말이 지니고 있는 미숙함, 한계를 의미한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오히려 표정과 슬랩스틱을 끌어내기 위한 전략적 장치로서의 한계라는 생각마저 들게 한다. 그만큼 내용과 형식이 일치를 이루고 있다는 얘기가 아닐까. 이렇게 초창기에 해당하는 작품들이지만 본격적인 형태로 등장하는 것들이 있다. 조금 과장해서 이미 모든 것을 시도해 본 작품들. 그 '본격적 초기작'들은 이후의 작품들을 조용히 구..
이건 지극히 개인적인 취향에 대한 이야기이다. 시집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하는 경우, 나는 항상 정해진 몇권의 시집으로부터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그건 나의 출생연도와도 관계가 깊다. 나의 20대가 어떤 시대를 통과하고 있ᅌᅥᆻ으며, 당시의 시인들은 습작기에 어떤 시집들을 주로 읽었는가는 매우 중요하기 때문이다. 공교롭게도 내가 좋아하는 시집은 모두 같은 출판사의 시집들이다. 여기에 네권을 추려놓았는데, 모두 문학과지성사의 시집들이다. 내가 해당 출판사에 애정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오히려 그 반대다.) 한자리에 모아놓고 보니, 표지디자인의 색과 형식이 모두 동일하다. 이는 100 단위로 나누었을때, 동일한 번호군에 분포하고 있다는 얘기다. 13, 16, 32, 80. 그..
The sound of silence (Simon & Garfunkel) The Sounds of Silence(1964) The Sounds of Silence(1966) Live Canadian TV, 1966 The Graduate, 1967 Hotel Costes 7, Trinity FM - "S.O.S. (The Sounds of Silence)" 더보기 Hello darkness, my old friend I've come to talk with you again Because a vision softly creeping Left its seeds while I was sleeping And the vision that was planted in my brain Still remains Wit..
문지 시인선 541번. 그러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시집을 읽을 때, 출판사 별로 찾아보는 습관을 버리기가 어렵다. 정말이지, 출판사에 대한 특별한 애착이 있어서가 아니다. 분명 어떤 불편함 또는 주저함이 있었음에도 읽고 있는 시집의 대부분은 몇 개의 출판사로 분류가 가능하다. 장현 시인의 『22: Chae Mi Hee』. 일단 쉽게 익숙해질 수 없는 제목부터 마음에 들었다. 최근 읽은 시집 중 가장 인상적인 작품집. 무엇보다 한꺼번에 쏟아져 나온듯한 폭발적 에너지, 그로인한 충격파 등등의 단어로 설명할 수 있을 듯. “그 누구와도 똑같지 않은”이라는 수사적 표현에는 동의하면서도 그것이 ‘완성’을 향한다는 생각에는 동의할 수 없는 시집. 이 작품집의 시편들은 선형적인 단계를 점유하며 완성태를 향해가기보다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