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도는 내가 버린 얼굴들이었으므로 나의 해변은 항상 모래성보다 먼저 폐허였다 알아들을 수 없는 농담처럼 내게 맞지 않는 신발들만 밀려왔다 - 「해변의 커튼콜」 中 육호수의 시집을 읽었다. 2016년 대산대학문학상 수상자이다. 파란색 시집이 바다같아서 투명한 바다를 들여다보는 듯한 기분이들었다. 시집을 읽을때마다, 해당 시집이 가지고 있는 고유성을 찾는데 골몰한다. 그것은 다른 시집과 구별되는, 해당 시집만의 고유한 '차이'라 할 수 있겠다. 이를테면 무엇이 이 시집을 육호수의 시집이 되게했을까. 육호수의 시집을 육호수의 시답게 하는 것은 무엇일까? 나는 이런 것들이 궁금했다. 과연 이러한 고유성은 어디에 있을까? 시인이 구사한 어휘에 있을까? 그가 시에서 사용한 어휘를 나열한 후에 그 의미를 추적 분석하..
소녀와 달빛 소녀는 잠을 잔다 나무의 발목에서 우물의 옆구리까지 걸어간다 그사이 태어난 아기를 훔친다 아기를 달과 함께 우물에 던진다 엄마는 달려와 물을 퍼낸다 소녀는 계속 잠을 잔다 우물의 겨드랑이에서 나무의 손목까지 걸어간다 그사이 태어난 아기를 나무 위로 던진다 달과 함께 아기가 나뭇가지에 걸린다 엄마는 나무를 가만가만 타고 오른다 소녀는 잠을 잔다 나무의 목에서 공중의 물까지 걸어간다 그사이 태어난 아기를 지붕 위 달 옆에 올려놓는다 엄마는 집을 납작하게 찌그러뜨리고 지붕 위로 올라간다 누가 아기를 여기다 낳아 놓았나! 엄나가 아기를 안는다 소녀는 계속 잠을 잔다 - 『그 숲에서 당신을 만날까』 中 근래 나는 언어의 의미와 이미지 사이에서 고민 중이다. 의미에 의지해 시의 중심에 다가서는 독법은 ..
김언의 알다가도 모를 마음을 읽었다. 그의 작품에는 신파가 없다. 작품이 쓰여지기 이전의 경험 세계를 작품이 쓰여지는 공간으로 진입시키며 철저하게, 그렇지만 세련되게 통제하고 있는 작품들이다. 그의 작품이 개성적이 될 수밖에 없는 이유라 생각한다. 그러나 나의 작품은 경험에서 비롯되는 정서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나는 감정적 인과를 마치 필연적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강하다. 그래서 문장과 문장을 이어주는 접속사에 집착하는 습관이 있다. 그래서 어느 순간부터 작품은 나의 의지를 벗어난 곳에서 완성된다. 아니 그렇다고 믿고 싶어한다. 그러다보니 나의 작품은 조금 촌스런 인상을 준다. 김언의 작품은, 작품을 읽고 있다는 생각보다 작품론을 읽고 있다는 인상을 준다. 그의 시를 볼때는 그의 방법론을 파악해 내는 것..
마지막 장면 오손 웰스가 등장하는 이 영화는 매력적인 요소가 많다. 미국의 삼류 소설가 홀리는 친구의 초대로 종전 직후의 오스트리아를 찾는다. 그런데 도착하자마자 그는 자신을 초대한 친구 해리가 교통사고로 죽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런데 홀리는 친구 해리의 죽음에 어딘지 석연치 않은 구석이 있음을 감지한다. 그리고 그의 죽음을 파헤치기 시작한다. 이렇게 미스터리 스릴러물로 영화는 시작하는데, 그 과정에서 친구의 여자친구와 미묘한 감정을 주고 받는다. 물론 이것은 영화의 서사에 해당하는 부분이다. 원작 소설을 영화한 작품인만큼 서사의 견고함은 두말할 나위가 없을 것이라 본다. 다시 말해, 이 영화가 지니고 있는 이야기 구조는 이 영화만의 고유한 자질은 아니라는 말이다. 내가 이 영화에서 주목한 장면은,..
유튜브를 잘 뒤지다보면, 가끔 고전 영화의 전편들을 발견할 때가 있다. 그런데 소위 우리가 고전이라 칭하는 옛날 영화들은 시간 선후 관계에 따른 '낡음'이 없다. 나는 이러한 고전 영화가 내가 살고 있는 '지금·여기', 오늘날의 영화가 등장하기 까지 겪어야 하는 '과정'으로 보지 않는다. 다시 말해, 완성태를 향해가는 미성숙한 중간 단계의 영화가 아니라, 각각의 작품마다 완결성을 지닌, 하나의 새로운 '형식'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 새로운 영화적 형식이 오랜 시간을 통화하여 영화가 살아남는 방식이라 생각된다. 구성은 단순하지만, 그 단순함에 연루되어 있는 인물들의 욕망은 그리 단순하지 않다. 무의식 속, 언어화되지 않은, 인간의 맨 얼굴은 마주하기 불편하면서도 오래동안 영화를 기억하게 하는 힘이 있..
어떤 등장은 매우 인상적이다. 등장 자체가 하나의 의미가 되기 때문이다. 이후에 등장하는 많은 시집들을 자신의 영향권 안에 두면서 자신은 진화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어떤 변화를 시도하기 전에 그는 닫힌 세계가 되었다. 시집에 대한 해설은 여기저기 넘쳐나니 궁금한 사람은 직접 찾아읽어보길 권한다. 나는 여기에 지극히 개인적인 감상을 기록하고 있을뿐이다. 사실 나에게는 문장을 연습하는 몇가지 방법이 있다. 그중 하나는 나의 문장이 모국어의 문법을 벗어나지 못할때, 황병승의 시집을 읽는 것이다. 평론가들이 언급하는 시 속, 다양한 주체들은, 이미 어디에나 있었다. 이장욱이 말하는 '고무 찰흙 주체'는 이미 오래전부터 존재했고, 많은 예술 장르를 거쳐 드디어, 마침내 시라는 장르 속에 거처를 마련했다. 이 '..
나의 러시아 문학은 ‘고리끼’의 작품 『어머니』로부터 시작된다. 그 사이 체홉과 고골이 있었고, 투르게네프와 푸쉬킨도 있다. 그중 도스토예프스키의 『죄와 벌』과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는 단연 손에 꼽는 작품이다. 그래서 도스토예프스키는 좋아하는 작가 중에 한명이기도 하다. 그러나 내가 이야기 하고 싶은 것은 러시아 소설을 접할때마다 발견하게 되는 관습적 표현들에 대한 것이다. 거의 매번, 페치카 위에서 끓고 있는 사모바르가 있었고, 타르 냄새가 진동하는 낡은 건물이 있었다. 그리고 그 안에는 두꺼운 외투를 걸쳐입고 무엇인가 정서하고 있는 하급관리가 있었다. 그들은 거의 전형적인 등장 인물군이었다. 나의 『가난한 사람들』 읽기는 이러한 전제 하에서 시작했다. 이 작품은 가난한 중년의 하급 관리 제부쉬낀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