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등장은 매우 인상적이다. 등장 자체가 하나의 의미가 되기 때문이다. 이후에 등장하는 많은 시집들을 자신의 영향권 안에 두면서 자신은 진화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어떤 변화를 시도하기 전에 그는 닫힌 세계가 되었다. 시집에 대한 해설은 여기저기 넘쳐나니 궁금한 사람은 직접 찾아읽어보길 권한다. 나는 여기에 지극히 개인적인 감상을 기록하고 있을뿐이다. 사실 나에게는 문장을 연습하는 몇가지 방법이 있다. 그중 하나는 나의 문장이 모국어의 문법을 벗어나지 못할때, 황병승의 시집을 읽는 것이다. 평론가들이 언급하는 시 속, 다양한 주체들은, 이미 어디에나 있었다. 이장욱이 말하는 '고무 찰흙 주체'는 이미 오래전부터 존재했고, 많은 예술 장르를 거쳐 드디어, 마침내 시라는 장르 속에 거처를 마련했다. 이 '..
이건 지극히 개인적인 취향에 대한 이야기이다. 시집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하는 경우, 나는 항상 정해진 몇권의 시집으로부터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그건 나의 출생연도와도 관계가 깊다. 나의 20대가 어떤 시대를 통과하고 있ᅌᅥᆻ으며, 당시의 시인들은 습작기에 어떤 시집들을 주로 읽었는가는 매우 중요하기 때문이다. 공교롭게도 내가 좋아하는 시집은 모두 같은 출판사의 시집들이다. 여기에 네권을 추려놓았는데, 모두 문학과지성사의 시집들이다. 내가 해당 출판사에 애정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오히려 그 반대다.) 한자리에 모아놓고 보니, 표지디자인의 색과 형식이 모두 동일하다. 이는 100 단위로 나누었을때, 동일한 번호군에 분포하고 있다는 얘기다. 13, 16, 32, 80. 그..
문지 시인선 541번. 그러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시집을 읽을 때, 출판사 별로 찾아보는 습관을 버리기가 어렵다. 정말이지, 출판사에 대한 특별한 애착이 있어서가 아니다. 분명 어떤 불편함 또는 주저함이 있었음에도 읽고 있는 시집의 대부분은 몇 개의 출판사로 분류가 가능하다. 장현 시인의 『22: Chae Mi Hee』. 일단 쉽게 익숙해질 수 없는 제목부터 마음에 들었다. 최근 읽은 시집 중 가장 인상적인 작품집. 무엇보다 한꺼번에 쏟아져 나온듯한 폭발적 에너지, 그로인한 충격파 등등의 단어로 설명할 수 있을 듯. “그 누구와도 똑같지 않은”이라는 수사적 표현에는 동의하면서도 그것이 ‘완성’을 향한다는 생각에는 동의할 수 없는 시집. 이 작품집의 시편들은 선형적인 단계를 점유하며 완성태를 향해가기보다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