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영화’는 무엇이고 ‘영화적’이라는 말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잘 짜여진 스토리, 탄탄한 서사구조가 영화가 되는 것은 아니라 생각한다. 그것만으로 영화를 소설이나 웹툰 등의 다른 장르로부터 변별해내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편의 영화로부터 오는 특정 감정을 설명해내는 일이 그리 쉽지만은 않다. 그것이 영화의 작동방식 또는 영화가 구성되는 원리로부터 비롯된 감정인지, 적절하게 배치된 이야기 구조를 통해 촉발된 감정인지 쉽게 구분할 수 없기 때문이다. 2. 영화 카지노는 ‘에이스’(로버트 드니로)의 차량이 폭발하는 숏으로 시작된다. 폭발의 충격으로 튀어오른 에이스가 화염 속으로 오래오래 떨어지는 장면을 인트로로 사용할 만큼 중요한 의미가 있을 것으로 예상되는 장면이다. 그도그럴 것이 이후 관객들..
나는 평로가가 되기 위해서 이곳 '말이 누웠던 자리'에 글을 쓰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고 여기에 글을 쓰는 것이 오락이 되었으면 하고 바라는 것도 아니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놀이' 처럼 순수한 글쓰기가 되었으면 하고 바라는 마음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한 의미에서 남국재견에 대한 이 글도, 개인의 감상정도로 이해해 줬으면 좋겠다. 더욱이 영화를 본 시점이, 글을 쓰고 있는 이 순간으로부터 한참 떨어진 오래전의 일이기때문에, 남아 있는 기억을 기록해둔 인상기 정도로 이해해 주길 바란다. 영화를 찍고 싶게 만드는 영화 사실 나는 영화를 '서사'라는 범주 안에서 이해하고 싶은 마음이 없다. 그것보다는 영화에서 이야기를 구성하는 방식에 더 관심이 많다. 영화를 영화답게 하는 것은 영화 속의 이야기가 아니..
마지막 장면 오손 웰스가 등장하는 이 영화는 매력적인 요소가 많다. 미국의 삼류 소설가 홀리는 친구의 초대로 종전 직후의 오스트리아를 찾는다. 그런데 도착하자마자 그는 자신을 초대한 친구 해리가 교통사고로 죽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런데 홀리는 친구 해리의 죽음에 어딘지 석연치 않은 구석이 있음을 감지한다. 그리고 그의 죽음을 파헤치기 시작한다. 이렇게 미스터리 스릴러물로 영화는 시작하는데, 그 과정에서 친구의 여자친구와 미묘한 감정을 주고 받는다. 물론 이것은 영화의 서사에 해당하는 부분이다. 원작 소설을 영화한 작품인만큼 서사의 견고함은 두말할 나위가 없을 것이라 본다. 다시 말해, 이 영화가 지니고 있는 이야기 구조는 이 영화만의 고유한 자질은 아니라는 말이다. 내가 이 영화에서 주목한 장면은,..
유튜브를 잘 뒤지다보면, 가끔 고전 영화의 전편들을 발견할 때가 있다. 그런데 소위 우리가 고전이라 칭하는 옛날 영화들은 시간 선후 관계에 따른 '낡음'이 없다. 나는 이러한 고전 영화가 내가 살고 있는 '지금·여기', 오늘날의 영화가 등장하기 까지 겪어야 하는 '과정'으로 보지 않는다. 다시 말해, 완성태를 향해가는 미성숙한 중간 단계의 영화가 아니라, 각각의 작품마다 완결성을 지닌, 하나의 새로운 '형식'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 새로운 영화적 형식이 오랜 시간을 통화하여 영화가 살아남는 방식이라 생각된다. 구성은 단순하지만, 그 단순함에 연루되어 있는 인물들의 욕망은 그리 단순하지 않다. 무의식 속, 언어화되지 않은, 인간의 맨 얼굴은 마주하기 불편하면서도 오래동안 영화를 기억하게 하는 힘이 있..
Sherlock Jr, 1924 버스터 키튼은 찰리 채플린과 함께 무성영화시대의 한 축을 담당했던 배우이자 감독이다. 찰리 채플린만큼 알려지지 않았지만, 오히려 많은 씨네필의 지지를 받고 있는 배우가 아닐까. 찰리 채플린이나 버스터 키튼의 '무성'영화를 보고 있으면, '무성'이라는 말이 영화의 미발달 상태, '초기'라는 말이 지니고 있는 미숙함, 한계를 의미한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오히려 표정과 슬랩스틱을 끌어내기 위한 전략적 장치로서의 한계라는 생각마저 들게 한다. 그만큼 내용과 형식이 일치를 이루고 있다는 얘기가 아닐까. 이렇게 초창기에 해당하는 작품들이지만 본격적인 형태로 등장하는 것들이 있다. 조금 과장해서 이미 모든 것을 시도해 본 작품들. 그 '본격적 초기작'들은 이후의 작품들을 조용히 구..
사실 예술에 대한 요즘 나의 관심사는 전위적인 것에 있다. (이렇게 말하는 것을 보면 나는 참 촌스럽다.) 과거 미래파 논쟁에서 이미 논의된 내용이지만, 그래서 철지난 내용이기도 하지만, 어떻게 하면 지금까지 존재하지 않았던 새로운 이미지를 만들어낼 수 있을까에 대해서 나는 고민한다. 관습적이며, 익숙하게 만들어온 비유에 신물이 나기때문이기도 하다. 그래서인지, 서로 다른 이미지가 결합할 때의 파열음을 나는 사랑한다. ‘낯섦’이라고 말할 수 있을텐데, 나에게서 멀리 있는 것이기에 더욱 관심을 두는 것이 아닌지 모르겠다. 나는 지금 나의 예술적 관심사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지만, 이것은 모두 영화 석류의 빛깔에 대한 것이다. 사실상 대사없이 전개되고 있는 영화는 시적인 나래이션(자막으로 기억되는데)과 이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