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와 힐링의 담론에 익숙한 세대가 있다. 투표권이 있으니, 모두 그들의 눈치를 보면서 전전긍긍하는 모양새다. 그들의 주변을 살펴보면 위로와 힐링의 수사들이 넘쳐난다. 항상 응원받고, 지지받는다. 그들의 주변에 있는 사람들은 끊임없이 당신은 소중한 사람임을 강조하고 있으며, 오늘 하루 수고했다고 위로를 건넨다. 항상 이쁜 글씨체와 감성적인 일러스트로 위로와 힐링을 전한다. 정말 아름다운 세상이다. 아~, 이 아름다운 세상에서 사람들은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목숨을 끊는 일에 열정적이다. 열정은 언제나 아름다운 법이지. 그런데 가만히 듣고 있다보면 뭔가 이상한 기분이 든다. 왜, 이렇게까지 빨아댈까, 하는 생각. 아무리 위로와 힐링이 산업이 되었다고하지만, 이렇게까지 그들을 빨아대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러..
오늘은 '대화'에 대해서만 고민해야 했다. 심리적으로 어려운 시간이었다. 다툼과 갈등이 계속되었다. 그러나 무엇보다 힘들었던 것은 날것의 내 모습을 발견해야 한다는 사실이었다. 내가 생각하는 나의 모습은 나의 모습일 확률이 낮다. 나는 언제나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어려운 상대와 부딪히며 나를 만나곤 한다. 특히 가장 가까운 사람과 원활한 대화를 나누지 못할때, 그것으로 인해서 서로 통한다는 느낌을 받지 못할때, 많은 어려움을 느낀다. 내 앞에 앉아있는 사람의 이야기를 듣다보면, 때론 내가 자폐적이라는 생각을 종종한다. 상대의 말이 나에게 전해지지 않는다는 생각을 할때가 있다. 상대의 이야기를 듣고 있지만, 나는 나의 내면에서 밖으로 걸어나가지 못한다. 문을 열고 나가두손을 꼭 잡고, 상대에게 완전히 넘어..
나의 러시아 문학은 ‘고리끼’의 작품 『어머니』로부터 시작된다. 그 사이 체홉과 고골이 있었고, 투르게네프와 푸쉬킨도 있다. 그중 도스토예프스키의 『죄와 벌』과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는 단연 손에 꼽는 작품이다. 그래서 도스토예프스키는 좋아하는 작가 중에 한명이기도 하다. 그러나 내가 이야기 하고 싶은 것은 러시아 소설을 접할때마다 발견하게 되는 관습적 표현들에 대한 것이다. 거의 매번, 페치카 위에서 끓고 있는 사모바르가 있었고, 타르 냄새가 진동하는 낡은 건물이 있었다. 그리고 그 안에는 두꺼운 외투를 걸쳐입고 무엇인가 정서하고 있는 하급관리가 있었다. 그들은 거의 전형적인 등장 인물군이었다. 나의 『가난한 사람들』 읽기는 이러한 전제 하에서 시작했다. 이 작품은 가난한 중년의 하급 관리 제부쉬낀이 ..
Sherlock Jr, 1924 버스터 키튼은 찰리 채플린과 함께 무성영화시대의 한 축을 담당했던 배우이자 감독이다. 찰리 채플린만큼 알려지지 않았지만, 오히려 많은 씨네필의 지지를 받고 있는 배우가 아닐까. 찰리 채플린이나 버스터 키튼의 '무성'영화를 보고 있으면, '무성'이라는 말이 영화의 미발달 상태, '초기'라는 말이 지니고 있는 미숙함, 한계를 의미한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오히려 표정과 슬랩스틱을 끌어내기 위한 전략적 장치로서의 한계라는 생각마저 들게 한다. 그만큼 내용과 형식이 일치를 이루고 있다는 얘기가 아닐까. 이렇게 초창기에 해당하는 작품들이지만 본격적인 형태로 등장하는 것들이 있다. 조금 과장해서 이미 모든 것을 시도해 본 작품들. 그 '본격적 초기작'들은 이후의 작품들을 조용히 구..
정치인들을 욕하고 있다보면, 어느 순간 그들에게 놀아났다는 사실에 몹시 불쾌해진다. 나의 분노와 원망까지도 그들의 전략에 의해 기획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지울 수 없기 때문이다. 사실 나는 실용주의를 신뢰하지 않는다. 중도주의는 더더욱 믿음이 가지 않는다. 기계적 중립을 정의 또는 합리적이라 말하는 것에 동의하지 않는다. 실제 그 누구에게서도 중도적인 면모를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버스 요금이나 수도세를 내리는 것과 같이 직접적인 이익에 대해 편향적일 수밖에 없는 개인이 스스로를 가리켜 중도라고 말하는 것은, 자신은 합리적 판단이 가능한 존재라는 환상에 지나치게 사로잡힌 결과로 여겨진다. 특히 미래에 대한 기대 또는 전망은 각자 자기자신의 가치관에 따라 편향적일 수밖에 없지 않은가. 그럼에도 정치인..
이건 지극히 개인적인 취향에 대한 이야기이다. 시집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하는 경우, 나는 항상 정해진 몇권의 시집으로부터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그건 나의 출생연도와도 관계가 깊다. 나의 20대가 어떤 시대를 통과하고 있ᅌᅥᆻ으며, 당시의 시인들은 습작기에 어떤 시집들을 주로 읽었는가는 매우 중요하기 때문이다. 공교롭게도 내가 좋아하는 시집은 모두 같은 출판사의 시집들이다. 여기에 네권을 추려놓았는데, 모두 문학과지성사의 시집들이다. 내가 해당 출판사에 애정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오히려 그 반대다.) 한자리에 모아놓고 보니, 표지디자인의 색과 형식이 모두 동일하다. 이는 100 단위로 나누었을때, 동일한 번호군에 분포하고 있다는 얘기다. 13, 16, 32, 80. 그..
나의 반려 식물, 소사나무 아주 자연스럽게 어느 순간에 나는 나무를 심고 있었다. 일산 호수공원 어디쯤에 있었던 화원에서 구입한 어린 묘목이다. 어린 시절 아버지가 키우던 소사 분재를 봐왔던 터라 낯설지 않은 나무다. 나는 느티나무를 좋아하는데, 왜 그런지 꼭 느티나무와 비슷하게 생각되는 구석이 있다. 그래서 애착이 가는 녀석. 주변에 하나둘 식물들이 늘어간다. 사실 요즘 나는 생각이 많다. 삶이 내 뜻대로 되지 않는다는 생각을 자주한다. 그릇이 작아서 인지 주위에 남아 있는 사람들도 없다. 딱히 외롭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아닌데, 앞으로 남아 있는 삶이 즐거울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든다. 처음으로 '나는 누구인가?'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중이다. 이렇게 깊고 큰 현타가 온적이 없다. 20대는 나에 대한 ..